책 한 권 여유로 진화의 기쁨을
‘산만함’ 만연한 사회 독서 정착 어려워, ‘견딤’의 책읽기로 더 나은 삶·행복 찾길
- 김용은 수녀(미디어리터러시 전문강사)어렸을 때 신나게 춤추면서 노래했던 ‘그대로 멈춰라’라는 동요가 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말라는 노래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으면 우리는 더 움직인다. 눈도 입도 행동도 커진다. 그런데 멈추니 더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현대인은 자극적이고 찰나적인 것에 익숙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움직인다. 우리는 어쩌면 ‘산만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산만한 지각을 훈련받고 있다’(벤야민)고 한다. 많은 학부모들은 말한다. “우리아이 머리는 좋은데, 좀 산만해서 책읽기를 힘들어해요.”
산만함이 무엇인가? 느리면서 인내하지 못하고, 일 저지르고 책임은 회피하며, 자극적인 것에 반응하지만 상징적이고 언어적인 것에 더디다. 우선순위가 없어 하고 싶은 것에 벗어나지 못하고, 목표 없이 한눈 판다. 하는 일마다 끝을 내는 것이 없어 허구한 날 듣는 것이 잔소리니 웬만한 다그침은 일상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성찰과 멈춤을 요하는 ‘책읽기’가 두렵다. 그래서 그저 보기만하면 되는 영화, 아니면 게임처럼 전혀 한눈 팔 수 없게 하는 것이어야 즐길 수 있다.
현대인은 바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한국인의 하루 독서시간이 평균 8분이라면서, 이 시간은 하루 화장실 들락거리는 시간도 안 되며 감기 걸린 날 코푸는데 드는 시간 정도라고 한탄한다. 오히려 교통수단의 발달과 쉽고 편리한 가전제품으로 더 많은 여유가 생겼을 텐데 말이다.
여유를 즐기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그래서 여가를 보내면서도 일을 하고 일하면서도 논다. 친구와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도 만남에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문자를 보내고 궁금한 것이 생각나면 인터넷 서핑을 하고 그러다가 엉뚱한 이슈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현대인을 창조적이고 진화된 디지털맨이라 하는 학자들도 있다. 진정한 몰입의 즐거움을 앗아간 산만한 자리에서 기쁨이 아닌 쾌락으로, 삶(life)이 아닌 생계(living)로 ‘마음’을 소홀히 하는 생활태도가 진화라 한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진정한 진화를 꿈꾸려면 멈춰야 한다. 지루하고 호흡이 가빠오더라도 두꺼운 책에 손을 얹고 스스로 속도를 내지 않는 활자에 생명을 넣는 창조를 이뤄내야 한다.
혼자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내용 없는 TV에 눈을 맞추며 허공을 헤매는 일을 잠시 멈추자. 그리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성당에서 견디기 힘든 고독을 품고 또 품어 ‘산만함’의 진통을 깨고 나온 ‘견딤’과 ‘멈춤’의 기쁨을 누리자.
그때야 비로소 즐겁게 춤을 추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화를 꿈꾸는 디지털맨이여! 그대로 멈춰라!
이 책은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었어. 정말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지.”
“이 책은 너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로 가득해. 시간낭비였어.” 똑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같은 텍스트, 그러나 다른 반응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사람들의 느낌은 어떤 상황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Beck, Ellis)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석하는 방식에 의하여 우리는 감정변화를 겪고 반응하고 행동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또 믿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곧 그 사람의 품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반복된 일상 안에서 감각적인 정보와 이미지에 노출되어 ‘재미’라는 익숙한 감정에 중독되어간다. 그래서 자칫 그 감정으로 TV 보듯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 장의 종이에서 우정과 삶과 마음을 본다. 또 어떤 이는 작은 꽃 한 송이에서 거대한 우주를 체험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연못에서 물고기를 보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에 대한 관심과 흥미로 하루를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스포츠와 게임, 드라마와 영화배우들의 스캔들에 대한 감각적인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는지. 삶과 우정, 창조와 생명 그리고 철학과 비전에 대한 책속의 감동을 나누며 보냈는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루가 곧 자신의 모습이며 내면의 품격으로 영적성장에 영향을 준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일시적 감상이나 신비적 체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적성장은 지성과 감성 그리고 행동의 통합 안에서 전체적인 성품으로 드러난다. 과연 ‘책읽기’를 통하여 영적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는 책속 언어의 매개를 통하여 거대한 세상을 만난다. 언어로 재창조된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이 태어난다. ‘책읽기’를 통하여 꿈꾸고 생각하고 몰입하면서 의식이 깨어난다. 평생을 살아도 만날 수 없는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 잠들어있는 자신을 깨우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약으로써 병을 고치듯 독서로써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서관은 영혼을 위한 약의 저장소’라 여겼고, 로마인들은 ‘환자들이 연설문을 읽으면 정신 건강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년)는 「호르텐시우스」(The Hortensius)라는 책을 읽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하며 감탄하고 그동안의 꿈들은 헛되었음을 깨달아 영원한 진리를 향한 새로운 사람으로서 태어날 수 있게 됨을 고백한다.
이렇듯 책읽기는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살아왔던 익숙한 일상의 습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영혼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지금 당신은 ‘무엇’에 몰입하며 하루를 보내는가? 기억하자. 그 ‘무엇’이 곧 당신의 ‘인격’임을.
[주교회의 매스컴위 제공 독서사목을 위한 제언]발행일 : 2010-05-30 [제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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